Japan, 維新の嵐 ・ 幕末志士伝(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 井上馨(이노우에 카오루)

번역(翻訳): 방석구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

井上馨(聞多) いのうえ かおる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

天保6年, 1835 ~ 大正4年, 1915. 享年81歳.
텐포 6년(天保 6年) ~ 다이쇼 4년(大正 4年). 향년 81세.

 長州藩の250石取りの上士。長州藩の倒幕志士の中でも、屈指の名門の出。藩主父子に愛され、小姓として常に側近くに仕えた。馨(聞多)の名は、何事にも興味を持ってよく人に尋ね、また知識も広かったことから藩主、毛利敬親が直々に名付けたもの。
 쵸슈한(長州藩)의 250 고쿠(石)를 소유한 죠시(上士). 쵸슈한(長州藩)의 토바쿠(倒幕) 지사(志士) 가운데서도, 굴지의 명문출신이다. 한슈(藩主) 부자(父子)에게 총애 받아, 시동(小姓)으로서 항상 측근에서 모셨다. 카오루 – 통칭 분타(聞多) – 라는 이름은 어떤 일에도 흥미를 가지고 종종 사람들에게 묻고, 또한 지식도 넓혔던 일에서 한슈(藩主) 모리 타카치카(毛利敬親)가 직접 이름을 지은 것이다.

 集金能力に異常な才能があり、長州藩の倒幕活動金のほとんどは、この井上が一人で捻出した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しかし同時に金にルーズな性格で、幕末期はもちろん、明治政府においても公金をしばしば横領し、賄賂にまみれた政治家生活を送った。今でいう汚職政治家の元祖というべき存在。
 수금능력에 비상한 재능이 있어, 쵸슈한(長州藩)의 토바쿠(倒幕) 활동자금의 대부분은, 이노우에(井上)가 혼자서 염출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돈에 루스(Loose)한 성격으로, 바쿠마츠(幕末) 때는 물론, 메이지(明治) 정부에 와서도 공금을 여러 차례 횡령하고, 뇌물투성이가 된 정치가 생활을 보냈다. 지금으로 말하면 비리 정치가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上士の出ながら身分差別意識がなく、藩では武士仲間にも入れない最下級層の出身だった伊藤博文(俊輔)が親友中の親友。女に目がない点も、二人はよく似ている。
 죠시(上士) 출신이면서도 신분차별 의식이 없어서, 한(藩)에서는 부시(武士) 패에도 끼워주지 않는 최하급층 출신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벗중의 벗이었다. 여자에게 사족을 못쓰는 점까지 둘은 매우 닮았다.

 また強運の持ち主で、攘夷派テロリストに体中を斬り刻まれても生き返ったほど。反面、達人、斎藤弥九郎に師事したにも関わらず、剣はからっきしダメだった。
 또한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으로, 죠이파(攘夷派) 테러리스트(Terrorist)에게 온몸을 난자 당했어도 살아났을 정도이다. 반면, 켄카쿠(剣客) 사이토 야쿠로(斎藤弥九郎)에게 사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켄(剣)에는 무지했다.

용어 설명
– 죠시(上士) じょうし
부케시대(武家時代)에 신분(身分)이 높은 부시(武士).

– 쵸슈(長州) ちょうしゅう
나가토노쿠니(長門国)의 다른 이름. 나가토(長門).

– 토바쿠(倒幕) とうばく
바쿠후(幕府)를 타도하자는 주장.

– 죠이(攘夷) じょうい
외세(外勢)를 배척(排斥)하고 개국(開國)을 반대함.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관련 서적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씨의 바쿠마츠(幕末) – 죽어도 죽지 않는다(死んでも死なぬ)

사진 출처
근대 일본인의 초상(近代日本人の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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