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維新の嵐 ・ 幕末志士伝(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 大久保一翁(오쿠보 이치오)

번역(翻訳): 방석구

오쿠보 이치오(大久保一翁)

大久保一翁(おおくぼ いちおう)
오쿠보 이치오(大久保一翁)

文化14年, 1817 ~ 明治21年, 1888. 享年72歳.
분카 14년(文化 14年) ~ 메이지 21년(明治 21年). 향년 72세.

 本名は忠寛(ただひろ)。三河以来の名門旗本の家に生まれる。物腰穏やかで、誰と接する時でも常に微笑をたたえていたという。しかしその柔和な雰囲気の裏にある正体は、恐るべき頭脳と情勢分析の才能を持った、幕末第一のテクノクラートだった。
 본명은 타다히로(忠寛). 미카와(三河) 이래 명문 하타모토(旗本) 가(家)에서 태어났다. 언동이 온후하고, 누구와 만날 때에도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온화한 분위기 뒤에 있는 정체는 무서운 두뇌와 정세분석의 재능을 가진, 바쿠마츠(幕末) 제일의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였다.

 一翁は英邁な老中として知られた阿部正弘に見出され、外国、京都奉行など重職を歴任。代々の旗本で、しかもエリート中のエリートだったが、実際には早くから幕府の滅亡を見抜いていた。かといって朝廷に政治能力のないことも、鋭敏な一翁には分かりきっていた。
이치오(一翁)는 영매(英邁)한 로쥬(老中)로서 알리어진 아베 마사히로(阿部正弘)에게 발탁되어, 외국, 쿄토부교(京都奉行) 등 중직을 역임했다. 대대로 하타모토(旗本)이고, 게다가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지만, 실제로는 오래 전부터 바쿠후(幕府)의 멸망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そんな一翁がたどり着いたのは、政権を一旦朝廷に返し、改めて優れた政治力を持った人材を集めて国政を任せるという道だった。
 그런 이치오(一翁)가 도달한 결론은, 정권을 일단 조정에 돌려주고, 다시 출중한 정치력을 가진 인재를 모아서 국정을 맡긴다는 것이었다.

 つまり大政奉還と議会政治のことであり、驚くことに一翁は早くも文久年間にこの二つを公に提唱している。徳川慶喜が大政奉還に踏みきるのは5、6年も後のことで、この一事を見ても、一翁の頭脳がどれだけ先進性に富み、かつ的確だったかが分かる。
 즉, 타이세이호칸(大政奉還)과 의회정치(議会政治)이며, 놀랍게도 이치오(一翁)는 이미 분큐(文久)사이에 이 두 개를 공식적으로 제창하고 있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가 타이세이호칸(大政奉還)을 단행한 것은 5, 6년 후의 일이어서, 이 사건만 보아도, 이치오(一翁)의 두뇌가 얼마나 선진성(先進性)이 풍부한 동시에 정확했는가를 알 수 있다.

 勝海舟を阿部に推挙したのは一翁で、その勝は坂本龍馬を育てた。幕末ニッポンを導いた二人の偉人の思想的母体は、いわば大久保一翁の頭脳だったことになる。
 카츠 카이슈(勝海舟)를 아베(阿部)에게 추천했던 것은 이치오(一翁)로, 그 카츠(勝)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스승이 된다. 바쿠마츠(幕末) 일본(Nippon)을 이끈 두 명의 위인(偉人)의 사상적(思想的) 모체는, 말하자면 오쿠보 이치오(大久保一翁)의 두뇌였던 것이 된다.

 しかし日本第一等の頭脳から見れば、幕閣のほとんどは無能に映り、慶応元年に早々に隠居。後に乞われて明治新政府に出仕するが、あえて閑職に甘んじ晩年を送った。自分の発言を理解できない明治顕官たちの馬鹿さ加減が、我慢できなかったに違いない。
 그러나 일본 제일의 두뇌에서 보면, 밧카쿠(幕閣)의 대부분은 무능하게 비쳐, 케이오 원년(慶応 元年, 1865年)에 서둘러 인쿄(隠居)한다. 후에 청함을 받아서 메이지 신정부(明治新政府)에 출사하지만, 구태여 한직(閑職)에 머물러 만년(晩年)을 보냈다. 자신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한 메이지(明治) 고관들의 바보 같은 상태를, 견딜 수 없었던 게 틀림없다.

용어 설명
– 하타모토(旗本) はたもと
(1) 군진(軍陣)에서 다이쇼(大将)가 있는 곳. 즉 본영(本陣).
(2) 에도시대(江戸時代)에 쇼군(将軍)에 직속(直属) 가신(家臣)으로써 봉록 1만(万) 고쿠(石) 이하인 부시(武士).

– 타이세이호칸(大政奉還) たいせい-ほうかん
케이오 3년(慶応 3年, 1867年) 11월 9일 도쿠가와(徳川) 15대 쇼군(将軍) 요시노부(慶喜)가 세이이 타이쇼군(征夷大将軍)의 직(職)을 그만두고, 정권을 조정(朝廷)에 반상(返上)하는 것을 제의, 이튿날 조정(朝廷)이 그것을 허가한 일. 고부갓타이파(公武合体派)의 전 토사(土佐) 한슈(藩主) 야마노치 토요시게(山内豊信)의 상신에 의하지만, 토바쿠(討幕)의 명분을 상실한 것으로 보았던 토바쿠파(討幕派)는 동일 토바쿠(討幕)의 밀칙(密勅)을 얻어, 쿠데타(Coup d’état)에 의한 요시노부(慶喜)의 사관납지(辞官納地)를 결정하고, 토바후시미 전투(鳥羽伏見の戦い)를 거쳐 보신센소우(戊辰戦争)로 발전시켰다.

– 고부갓타이(公武合体) こうぶ-がったい
고(公)는 텐노(天皇)의 정부 부(武)는 도쿠가와 바쿠후(徳川幕府)의 정부를 나타내며 텐노(天皇)와 바쿠후(幕府)가 협력해야 한다는 사상. 고부갓타이(公武合体)를 실천하기 위해 고메이(孝明) 텐노(天皇)의 누이 카즈노미야(和宮)와 쇼군(将軍)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가 정략결혼을 한다.

– 밧카쿠(幕閣) ばっかく
바쿠후(幕府)의 최고수뇌부.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사진 출처
근대 일본인의 초상(近代日本人の肖像)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