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維新の嵐 ・ 幕末志士伝(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 近藤勇(콘도 이사미)

번역(翻訳): 방석구

近藤勇(こんどう いさみ)
콘도 이사미(近藤勇)

天保5年(1834) ~ 慶応4年(1868). 享年35歳.
텐포 5년(天保 5年, 1834年) ~ 케이오 4년(慶応 4年, 1868年). 향년 35세.

 武蔵国多摩郡の農家に生まれる。浪士隊を経て新撰組を結成し、芹沢鴨一派打倒後は、名実共に局長となって京の治安維持に努めた。
 무사시노쿠니(武蔵国) 타마군(多摩郡)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로시타이(浪士隊)를 거쳐서 신센구미(新撰組)를 결성해, 세리자와 카모(芹沢鴨) 일파를 제거한 후에는, 명실공이 국장(局長)이 되어 쿄(京)의 치안유지에 힘썼다.

 幼少時から剣の修行に励み、土地の田舎剣法、天然理心流の宗家、近藤周助に見込まれ、養子となる。江戸小石川(一説に市ケ谷)に試衛館を開くかたわら、郷里の多摩地方にも出稽古に出かけ、土方歳三や沖田総司などと出会う。
 유소년 시절부터 켄(剣) 수행에 힘써, 그 고장의 시골검법, 텐넨리신류(天然理心流)의 종가(宗家), 콘도 슈스케(近藤周助)에 신임 받아, 양자(養子)가 되었다. 에도(江戸) 코시카와(小石川) – 일설에는 이치가야(市ケ谷) – 에 시에이칸(試衛餡)을 여는 한편, 고향인 타마(多摩)지방에도 출장지도를 나가, 히지카타 토시죠(土方歳三)나 오키타 소지(沖田総司)등과 만남을 가졌다.

 物事に動じない器量と、他人を懐に受け入れて溶け込ませる人的魅力に溢れた、生まれながらの頭領タイプ。これに天性の副官、土方歳三の組織作りの才覚があわさって、新撰組は幕末最強の戦闘集団に育っていった。
 매사에 동요하지 않는 기량과, 타인을 품에 받아들여 융화시키는 인간적 매력이 넘치는 타고난 우두머리 타입이었다. 여기에 타고난 부관(副官) 히지카타 토시죠(土方歳三)의 조직을 만드는 재능이 합처져, 신센구미(新撰組)는 바쿠마츠(幕末) 최강의 전투집단으로 자라갔다.

 武士への憧れが激しく、戦国武将のように一国一城の主人になることを夢見た。特に加藤清正に傾倒し、酒に酔うとゲンコツを口に出し入れし、『これができたのはわしと清正公だけじゃ』と大笑いしたという。
 부시(武士)로의 동경이 심해서, 센고쿠무장(戦国武将)처럼 일국일성(一国一城)의 주인이 되는 것을 꿈꿨다. 특히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에 심취해, 술에 취하면 주먹을 입에 넣고 꺼내고,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은 나와 키요마사공(清正公)뿐이다」라고 크게 웃었다고 한다.

 新撰組は時勢に疎く、歴史に抗がって滅びたと思われがちだが、近藤自身は尊王の志篤く、それでもあえて徳川幕府と士道に殉じたというのが事実。実際、土佐の後藤象二郎は近藤を高く評価し、また明治期きってのジャーナリスト、福地桜痴も『ヤマ師的な剣術道場主が多い中、近藤だけは孤高の輝きを放つ人格者だった』と絶賛している。
 신센구미(新撰組)는 시세에 어둡고, 역사에 저항해서 절멸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콘도(近藤) 자신은 손노(尊王)의 뜻이 독실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도쿠가와 바쿠후(徳川幕府)와 부시도(武士道)를 위에 순사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토사(土佐)의 고토 쇼지로(後藤象二郎)는 콘도(近藤)를 높이 평가하고, 또한 메이지시기의 저널리스트(Journalist), 후쿠치 오치(福地桜痴)도 「사기꾼 같은 검술(剣術) 도장(道場)의 주인이 많은 와중에도, 콘도만은 고결한 빛을 발하는 인격자였다」고 극찬하고 있다.

용어 설명
– 텐넨리신류(天然理心流) てんねん-りしんりゅう
검술(剣術) 류파(流派)의 하나. 류소(流祖)는 콘도 쿠라노스케 나가히로(近藤内蔵之助長裕). 무사시(武蔵) ・ 사가미(相模)를 중심으로 보급. 4대(四代)가 콘도 이사미(近藤勇).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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