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維新の嵐 ・ 幕末志士伝(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 吉田松陰(요시다 쇼인)

번역(翻訳): 방석구, 총 진행도 54/56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吉田松陰(よしだ しょういん)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天保元年(1830) ~ 安政6年(1859). 享年29歳.
텐포 원년(天保 元年, 1830年) ~ 안세이 6년(安政 6年, 1859年). 향년 29세.

 長州藩士。幕末最大の思想家にして教育者、あるいは狂信的な煽動家。
 쵸슈(長州) 한시(藩士). 바쿠마츠(幕末) 최대의 사상가(思想家)이자 교육자(教育者), 또는 광신적(狂信的)인 선동가(煽動家).

 幕末にキラ星のごとく現われた多くの天才とは違い、努力と行動によって歴史に名を刻んだ信念の人。叔父のスパルタ教育を受けて、10歳の時には藩主の御前で山鹿流兵学を講義するまでに至った。松下村塾を継いで高杉晋作、久坂玄瑞、入江九一、吉田稔麿、伊藤博文(俊輔)、山県有朋ほか、幕末・明治の多くの人材を育てたことはあまりにも有名。
 바쿠마츠(幕末)기에 기라성(綺羅星) 같은 수많은 천재들과는 달리, 노력과 행동에 의해서 역사(歴史)에 이름을 각인한 신념의 인물. 숙부(叔父)에게 스파르타식 교육(Sparta教育)을 받아, 10살에는 한슈(藩主)의 어전에서 야마가류(山鹿流) 병학(兵学)을 강의하기에 이르렀다. 쇼카손쥬쿠(松下村塾)를 계승해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이리에 쿠이치(入江九一), 요시다 토시마로(吉田稔麿),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 슌스케(俊輔) -,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 등 바쿠마츠(幕末) ・ 메이지(明治)의 수많은 인재(人材)를 길러낸 것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意外なことに思想家としての松陰は、その出発点では穏健な公武合体論者だった。しかし幕府と朝廷が協力しあい、外敵に備えて日本を強くしても、それはただ幕府だけを肥え太らせることに過ぎないと気づいた時から、松陰は思想家、教育者としての仮面を脱ぎ捨て、激烈な行動家となった。アメリカへの密航、老中の暗殺計画など、松陰は次々と過激な計画を企図しては、その都度、挫折する。
 뜻밖에도 사상가(思想家)로서의 쇼인(松陰)은 그 출발점이 온건(穏健)한 고부갓타이론(公武合体論)자였다. 하지만 ①바쿠후(幕府)와 조정(朝廷)이 협력하고, 외부의 적에 대비해 일본(日本)을 강화해도, 그것은 바쿠후(幕府)만을 비대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시점부터, 쇼인(松陰)은 사상가(思想家), 교육자(教育者)로서의 가면을 벗어 던지고 격렬한 행동가(行動家)가 되었다. 아메리카(America)로의 밀항(密航), 로쥬(老中) 암살계획(暗殺計画) 등, 쇼인(松陰)은 잇달아 과격한 계획을 기도(企図)했지만 그때마다 좌절했다.

주(註): ① 고부갓타이(公武合体)를 말합니다.

 その果てにたどり着いた思想が、武力による倒幕だった。この時点では、松陰の良き理解者だった桂小五郎も愛弟子の高杉も松陰を諌めた。それに対する言葉が、松陰の生き方の全てを簡潔に表わしている。「僕は忠義を成すつもり、諸君は功業を成すつもり」。この場合の忠義とは朝廷、あるいは天の意志に対するものであり、功業とは名誉や命、金銭などを惜しむ世俗的な欲望を指しているのだろう。
 이런 우여곡절 속에 도달한 사상(思想)이 무력에 의한 토바쿠(倒幕)였다. 이런 상황에서 쇼인(松陰)의 좋은 이해자인 카츠라 코고로(桂小五郎)도 애제자인 다카스기(高杉)도 쇼인(松陰)에게 간언했다. 그것에 대한 답이 쇼인(松陰)의 삶의 방식 전부를 간결하게 나타내고 있다. 「나는 충의(忠義)를 이루기 위하여, 제군(諸君)은 공적을 이루기 위하여」. 이 경우 충의(忠義)란 조정(朝廷), 혹은 하늘의 뜻을 가리키며, 공적이란 명예(名誉)나 목숨(命), 금전(金銭) 등에 애착을 갖는 세속적인 욕망 (欲望)을 가리키는 것이라.

 道徳や忠孝を重んじた常識人としての前半生に比べて、この頃から松陰は人変わりしたように狂信的な行動に走り出す。自らを”狂夫”と呼び、具体性や実現性を顧みないままに、己れの純粋思想を子弟の魂に植え付けていった。再び松陰は教育者に戻った。
 도덕(道徳)이나 충효(忠孝)를 중히 여기는 상식인(常識人)으로서 전반생을 보낸 것에 비견해, 이즈음부터 쇼인(松陰)은 사람이 변한 것처럼 광신적(狂信的)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광인(狂人)”이라 칭하고, 구체성이나 실현성은 염두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순수 사상(純粋思想)을 젊은이들의 혼(魂)에 이식했다. 다시 쇼인(松陰)은 교육자(教育者)로 돌아온 것이었다.

 そして自分の死をもって、松陰は思想教育の全プロセスを終了させた。自身の刑死という演出を起爆剤に、高杉以下、門下生を暴発させ、松陰は望み通り倒幕を果たした。
 그리고 자신의 죽음으로써 쇼인(松陰)은 사상 교육(思想教育)의 모든 프로세스(Process)를 마무리했다. 자신의 형사(刑死)라는 연출을 기폭제(起爆剤)로, 다카스기(高杉) 이하 모든 문하생(門下生)을 폭발시켜 쇼인(松陰)의 염원대로 바쿠후(幕府)의 타도 – 토바쿠(倒幕) – 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사진 출처
근대 일본인의 초상(近代日本人の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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