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몬 후유지(童門冬二)의 소설 우에스기 요잔(小説 上杉鷹山, 1983): 리뷰

소설 우에스기 요잔(小説 上杉鷹山)

도서 분류
일본(日本) 18세기 에도시대(江戸時代) 중 ・ 후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도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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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레키 원년(宝暦 元年, 1751年) 휴가노쿠니(日向国) 타카나베한(高鍋藩) 한슈(藩主)의 차남으로 출생한 마츠사부로(松三郎) – 우에스기 요잔(上杉鷹山)의 유명(幼名) – 는 호레키 10년(宝暦 10年, 1760年)에 9대 우에스기 시게사다(上杉重定)의 양자로 들어가 17세에 요네자와한(米沢藩)을 슈호우(襲封)한다. 그리고 이름을 우에스기 하루노리(上杉治憲)라 하였다.

 요네자와한(米沢藩)은 과거 에치코(越後)의 명문인 우에스기가(上杉家)로써, 2대인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 시절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아이즈(会津) 1백 20만(万) 고쿠(石)로 쿠니가에(国替) 되었고, 다시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의 패전으로 요네자와(米沢) 30만 고쿠로 쿠니가에 되었다.

 그 후, 카게카츠(景勝)가 감봉된 영지(領地)에 상관없이 가신단(家臣団)을 그대로 유지하였기에 수입은 턱없이 부족해졌고, 후대에 이르러서는 재정파탄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다. 예컨대 ①9대 시게사다(重定) 때에는 상인들로부터 빌려 쓴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 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주(註): ① 9대 라는 표기는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을 초대로 한 표기. 요네자와(米沢)로 쿠니가에(国替) 당한 겐신(謙信)의 양자(養子) 우에스기 카게카츠(上杉景勝)를 초대로 하면 8대가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루노리(治憲)는 한세이(藩政) 개혁에 대한 확고한 결의로써 서사(誓詞)를 작성하여, 메이와 4년(明和 4年, 1767年) 8월 1일에는 카스가 신사(春日神社)에, 9월 6일에는 시라코 신사(白子神社)에 보관하고, 9월 18일에는 개혁의 구체적 내용이 담긴 대검약령(大検約令)을 발표한다.

 안에이 2년(安永 2年, 1773年) 6월 27일, 점점 위기의식을 느끼던 보수파(保守派)가 대검약령(大検約令)에 수긍하지 못하고 마침내 크게 반동하여 이른바 칠가소동(七家騒動)이라는 쿠데타(Coupd´tat)를 감행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결과 자신들의 정치생명은 단축되었으며, 하루노리(治憲)와 한시(藩士)들과의 관계만 더욱 돈독히 만들어버렸다.

 텐메이 5년(天明 5年, 1785年), 하루노리(治憲)는 그의 번정(藩政) 개혁이 안정괘도에 진입하자 가독(家督)을 의부의 직계인 우에스기 하루히로(上杉治広)에게 물려준 후 인쿄(隠居)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35세였다. 허나 수구세력이 다시 고개를 들어 개혁의 물결이 역류하자, 다시 한번 한세이(藩政)에 참여한다.

 쿄와 2년(享和 2年 1802年) 11월, 그의 나이 52세에 호(号)를 요잔(鷹山)이라 칭하였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분세이 5년(文政 5年, 1822年)3월 12일, 매와 같이 유유히 창공을 날며, 요네자와(米沢)를 수호하였던 요잔(鷹山)은 72세의 나이로 타계한다.

– 2 –
 요잔(鷹山)은 재정파탄 ・ 관료(官僚)의 부정부패 ・ 구태의연한 관습주의 ・ 비실용적 형식주의 ・ 구성원간의 상호불신 등의 복합적 난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해 나간다.

 먼저 재속에서 피어난 불씨를 통해 개혁을 상징화 하고, 그것을 실체화 시킬 개혁적 인재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한의 재정은 산업진흥정책 – 직물, 견제품, 칠기, 잇꽃나무, 비단잉어, 사사노의 일도조각 – 을 실시하여 확보했고, 조직의 수혈을 위한 실용주의(實用主義) 학파의 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복지부동(伏地不動) 하는 수구세력은 단죄하였으나, 그들 중 자신의 변화를 꾀하는 이는 개혁의 일원으로 수용함으로써 기존의 개혁파가 가질 수 있는 독선과 아집(我執)을 견제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한세이(藩政) 개혁이 성공할 수 이었던 요체는 요잔(鷹山)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주권재민(主權在民) 사상과 – 그것은 그가 남긴 덴고쿠노모리(伝国の辞)에 명시되어 있다. 참고로 프랑스 인권선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은 1789년이었다. – 개혁을 주도함에 예외를 두지 않는 일관성 이었다고 생각한다.

 「소설 우에스기 요잔(小説 上杉鷹山)」은 배경연대가 18세기이지만, 현재 우리국가나 조직들이 처한 사항과 매우 흡사하기에 우리가 찾고자 하는 대안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시(藩士) 한 사람 한 사람이 불씨가 되어주기 바란다. 우선 자신의 가슴에 불을 붙여주기 바란다. 그리고 타인의 가슴에도 그 불을 옮겨주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자신을 태우겠다”

“개혁은 반대자들이나 부패한 적대자 들을 몰아내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원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의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용어 설명
– 한(藩) はん
에도시대(江戸時代)에 다이묘(大名)의 지배영역 또는 지배기구(機構)의 총칭.

– 한슈(藩主) はんしゅ
한(藩)의 영주(領主).

– 슈호우(襲封) しゅうほう
제후(諸侯)가 영지를(領地)를 계승하는 것.

– 쿠니가에(国替) くにがえ
부케시대(武家時代) 제후의 영지(領地)를 다른 곳으로 옮기던 일, 에도 바쿠후(江戸幕府)는 다이묘(大名)의 통제책(統制策)으로 사용했다.

– 덴고쿠노모리(伝国の辞) でんごくのもり
하나. 국가는 선조로부터 자손에게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결코 자신의 것으로 해서는 안 된다.
하나. 백성은 국가에 귀속되는 것으로, 결코 자신의 것으로 해서는 안 된다.
하나.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한슈(藩主)이어야 하고, 한슈(藩主)를 위하여 백성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참고 자료
덴고쿠노모리(伝国の辞) 요네자와시 우에스기 박물관(米沢市上杉博物館)
복안으로 읽는 우에스기 요잔공의 비화(複眼で読む上杉鷹山公秘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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