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의 구원의 여상

구원의 여상

구원의 여상은 성모 마리아입니다.
탄테의 베아트리체,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헤나(henna)의 ‘파비올라(Fabiola)’입니다.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기에는 좁은 길이라고 믿는 알리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한 ‘불타오르던 과거를, 쌓이고 쌓인 재가 덮어 버린 지금은 당신을 만나고 싶어해도 되겠지요.
언제라도 볼일이나 유람차 님므 부근에 오시거든 에그비브에도 들러주세요.’
이런 편지를 쓴 줄리에트도 구원의 여상입니다.

지나간 날의 즐거운 회상과 아름다운 미래의 희망이 고이 모인 얼굴.
그날 그날 인생살이에
너무 찬란하거나 너무 선스럽지 않은 것
순간적인 슬픔, 단순한 계교
칭찬 . 책망 . 사랑 . 키스 . 눈물과 미소에 알맞는 것

워즈워스의 이런 여인도 구원의 여상입니다.

여기 나의 한 女像이 있습니다. 그의 눈은 하늘같이 맑습니다.
때로는 흐리기도 하고 안개가 어리기도 합니다.
그는 싱싱하면서도 애련합니다.
명랑하면서도 어딘가 애수를 깃들이고 있습니다.

원숙하면서도 어딘가 앳된 데를 지니고,
지성과 한편 어수룩한 데가 있습니다.
걸음걸이는 가벼우나 빨리 걷는 편은 아닙니다.
성급하면서도 기다릴 줄을 알고,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수줍어 할때가 있고,
양보를 아니하다가도 밑질 줄을 압니다.
그는 아름다우나, 그의 아름다움은
사람을 매혹하지 않는 푸른 나무와도 같습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나 가난한 것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그는 파야프레스에 통장작을 못필 경우에는
질화로에 숯불을 피워 놓습니다.
차를 끓일줄 알며,
향취를 감별할줄 알며,
찻잔을 윤이 나게 닦을줄 알며,
이 빠진 접시를 버릴줄 압니다.

그는 한 사람하고 인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바라다 보는 일이 없습니다.
지위, 재산, 명성같은 조건에 현혹되어
사람의 가치 평가를 잘못하지 않습니다.
예의적인 인사를 하기도 하지만
마음에 없는 말은 아니합니다.
아첨이라는 것은 있을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는 남이 감당하지 못할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사치하는 일은 있어도 낭비는 절대로 안합니다.
돈의 가치를 명심하면서도 인색하지 아니합니다.
돈에 인색하지 않고 시간에 인색합니다.

그는 회합이나 남의 초대에 가는 일이 드뭅니다.
그에게는 한가한 시간이 많습니다.
미술을 업으로 하는 그는 쉬는 시간에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오래 오래 산책을 합니다.
그의 그림은 색채가 밝고 맑고 넓은 여백의 미가 있습니다.

그는 사랑이 가장 귀한 것이나,
인생의 전부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마음의 허공을 그대로 둘지언정
아무것으로나 채우지는 아니합니다.

그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하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받아서는 아니될 호의를
정중하고 부드럽게 거절할줄 압니다.
그는 과거의 인연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애의 일부분인 까닭입니다.
그는 예전 애인을 웃는 낯으로 만날수 있습니다.
그는 몇몇 사람을 끔직히 아끼지만
그러나 아무도 섬기지는 아니합니다.

그는 정직합니다. 정직은 인간에 있어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는 자기의 힘이 닿지 않는 광막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울고 싶을때 울 수 있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고갈하지 않는 윤기가 있습니다.

그는 한시간 내내 말 한마디 아니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런때라도 같이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기쁨을 갖게 합니다.

성실한 가슴,
거기에다 한 남성이 머리를 눕히고 살 힘을 얻을 수 있고,
거기서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그런 가슴을 그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신의 존재, 영혼의 존엄성, 진리와 미, 사랑과 기도, 이런 것들을
믿으려고 안타깝게 애쓰는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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