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維新の嵐 ・ 幕末志士伝(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 松平容保(마츠다이라 카타모리)

번역(翻訳): 방석구, 총 진행도 49/56

마츠다이라 카타모리(松平容保)

松平容保(まつだいら かたもり)
마츠다이라 카타모리(松平容保)

天保6年(1835) ~ 明治26年(1893). 享年59歳.
텐포 6년(天保 6年, 1835年) ~ 메이지 26년(明治 6年, 1893年). 향년 59세.

 会津藩主。尾張徳川家の分家、美濃高須松平家3万石に生まれる。実父の異母兄が会津藩主だったため、12歳で養子に入り、18歳で会津23万石の藩主となる。
 아이즈한슈(会津藩主). 오와리 도쿠가와가(尾張徳川家)의 분가(分家)인 미노(美濃) 타카스 마츠다이라가(高須松平家) 3만석에서 태어났다. 실부의 이복형제(異腹兄弟)가 아이즈한슈(会津藩主)였기 때문에, 12세에 양자(養子)로 들어가 18세에 아이즈(会津) 23만석의 한슈(藩主)가 되었다.

 尊王攘夷派志士たちのテロが最も過熱した文久年間には、京都守護職を拝命。藩士を率いて上洛し、また新撰組を後押しして京の治安維持に尽力した。
 손노죠이파(尊王攘夷派) 지사(志士)들의 테러(Terror)가 최고조였던 분큐(文久) 연간에는 쿄토슈고쇼쿠(京都守護職)를 삼가 임명 받았다. 한시(藩士)를 이끌고 상락(上洛)하고, 또한 신센구미(新撰組)를 후원해 쿄(京)의 치안유지에 힘을 다했다.

 「会津藩を滅ぼしてでも将軍家を守り抜け。他藩の例に倣うな」という、異常ともいえる家訓を遵守し、これが容保、ひいては会津藩に悲劇の宿命を背負わせることとなった。
 「아이즈한(会津藩)을 멸망시키더라도 쇼군가(将軍家)를 최후까지 지켜라. 타한(他藩)의 예를 모방하지 말아라」라는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가훈(家訓)을 준수해, 이것이 카타모리(容保), 나아가서는 아이즈한(会津藩)에 비극의 숙명을 짊어지게 만들었다.

 養子に入って以来、毎日飽くことなく老臣に繰り返されるうちに、容保はこの呪文の魔力に縛られていった。元来、生真面目でバカがつくほど正直な容保の性格も、災いしたといっていいかもしれない。西郷頼母を初め、重臣一同が「薪を背負いて火中に身を投じるようなもの」と諌めた京都守護職を、結局引き受けてしまったのも、それが将軍家を救うためと信じたからである。
 양자로 들어간 이래, 매일 질리도록 노신에게 반복되는 동안, 카타모리(容保)는 이 주문(呪文)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원래 고지식하고 바보라고 할 정도의 정직한 카타모리(容保)의 성격도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이고 타노모(西郷頼母)를 필두로 중신(重臣)일동이 「장작을 짊어지고 불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과 같다」라고 충고한 쿄토슈고쇼쿠(京都守護職)를 결국 맡아버렸던 것도, 그것이 쇼군가(将軍家)를 구하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しかしそんな性格を、徳川慶喜や松平慶永にはある意味、利用された。容保なら決して裏切らない。そればかりか、盾となって将軍家を守るだろう。その読み通り会津は薩長他、倒幕派の憎悪を一身にかぶり、”朝敵”として戊辰の役で全藩壊滅する。
 그러나 그러한 성격을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나 마츠다이라 요시나가(松平慶永)가 어느 의미로는 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카타모리(容保)라면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방패(盾)가 되어 쇼군가 (将軍家)를 지킬 것이다. 그 짐작대로 아이즈(会津)는 삿쵸(薩長)외, 토바쿠파(倒幕派)의 증오를 한 몸에 받아 “①조적(朝敵)”으로서 보신센소우(戊辰戦争)에서 전한(全藩)이 괴멸했다.

주(註): ① 조적(朝敵)은 조정의 적을 말합니다.

 唯一の救いは、崇拝して止まなかった孝明帝が容保を無二の忠臣と頼り、まるで弟のようにかわいがってくれたことだろう。孝明帝から贈られた宸翰を、容保は終生手離さなかった。今でもこの宸翰は、容保の無念と共に某銀行の金庫に眠っているという。
 유일한 구원은 숭배해 마지않던 코메이텐노(孝明天皇)가 카타모리(容保)를 둘도 없는 충신으로 여겨, 마치 동생처럼 귀여워해준 것일 것이다. – 킨몬의 변(禁門の変)의 공을 인정해 – 코메이텐노(孝明天皇)가 내린 ②신한(宸翰)을 카타모리(容保)는 평생 놓지 않았다. 지금도 그 신한(宸翰)은 카타모리(容保)의 무념(無念)과 함께 모 은행(某銀行)의 금고에서 잠자고 있다고 한다.

주(註): ② 천자(天子) 직필(直筆)의 문서(文書).

용어 설명
– 토바쿠(倒幕) とうばく
 바쿠후(幕府)를 타도하자는 주장.

– 보신센소우(戊辰戦争) ぼしん-せんそう
 케이오 4년(慶応 4年, 1868年) 보신(戊辰)의 해에 시작되어, 유신정부군(維新政府軍)과 큐바쿠후(旧幕府)측간의 사이에서 16개월간에 걸쳐서 싸웠던 내전(内戦). 정월 토바후시미 전투(鳥羽伏見の戦い)에서 승리했던 정부군(政府軍)은, 4월 에도죠(江戸城)를 접수, 우에노(上野)에 틀어박힌 쇼기타이(彰義隊)는 간토(関東) 각지에서 큐바쿠후(旧幕府) 주전파(主戦派)를 토벌하고, 오우에츠렛판동맹(奥羽越列藩同盟)를 맺어서 대항하는 제한(諸藩)을 아이즈센소우(会津戦争)를 정점으로 10월에는 귀순시켰다. 이듬해 5월, 최후의 거점(拠点) 하코다테고료카쿠(箱館五稜郭)를 함락(陥落)시키고, 내전(内戦)은 종결, 메이지(明治) 절대주의국가 확립으로의 길이 열렸다.

– 킨몬의 변(禁門の変) きんもん-のへん
 하마구리고몬의 변(蛤御門の変).

– 하마구리고몬의 변(蛤御門の変) はまぐりごもん-のへん
 겐지 원년(元治 元年, 1864年) 7월, 전년 8월 18일의 정변에서 쿄토(京都)를 쫓겼던 쵸슈한(長州藩)이 형세만회를 위하여 쿄토(京都)에 군사를 전진시켜, 아이즈(会津) ・ 사츠마한(薩摩藩) 등의 군사와 하마구리고몬(蛤御門) 근처에서 교전(交戦)하고 패했던 사건(事件).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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