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維新の嵐 ・ 幕末志士伝(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 板垣退助(이타가키 타이스케)

번역(翻訳): 방석구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

板垣退助(いたがき たいすけ)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

天保8年, 1837 ~ 大正8年, 1919. 享年83歳
텐포 8년(天保 8年) ~ 다이쇼 8년(大正 8年). 향년 83세.

 土佐藩士。300石取りの上士で、隣家の後藤象二郎とは幼なじみ。幕末から共に明治政府の高官となってから、互いを助け合う仲だった。高杉晋作と並ぶ実戦指揮の天才で、土佐藩の実質的な陸軍司令となり、薩長に次ぐ倒幕勢力に育て上げた。
 토사(土佐)의 한시(藩士). 300 고쿠(石)를 소유한 죠시(上士)로, 이웃의 고토 쇼지로(後藤象二郎)와는 소꿉친구이다. 바쿠마츠(幕末)부터 함께 메이지(明治) 정부의 고관이 된 후, 서로 상대방을 돕는 관계였다.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와 견줄 전투지휘의 천재로, 토사한(土佐藩)의 실질적인 육군사령이 되어, 삿쵸(薩長)에 버금가는 토바쿠(倒幕) 세력을 길러냈다.

 若い頃は喧嘩を探して城下を歩いたという剛の者。上士、郷士構わずに因縁をふっかけ、思う存分叩きのめす毎日を送っていたという。
 젊은 시절에는 싸움을 찾아서 성하를 거닐었다는 호걸. 죠시(上士), 고시(郷士)등 개의치 않고 시비를 걸고, 두들겨 패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吉田東洋の門下生だったため、当初は佐幕的な考えを持っていたが、坂本龍馬や中岡慎太郎らに感化されて倒幕論を唱えるようになる。また上士には珍しく郷士への偏見が薄く、龍馬、中岡らとも親交を結んでいた。この点では、竹馬の友の後藤とは少々異なる。しかし師の東洋を殺された恨みから、土佐勤皇党の弾圧には情け容赦なく、武市以下、党員を一斉に処刑している。
 요시다 토요(吉田東洋)의 문하생이었기 때문에, 당초는 사바쿠적(佐幕的)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나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慎太郎)들에 감화되어 토바쿠론(倒幕論)을 주창하게 된다. 또한 죠시(上士)로서는 드물게 고시(郷士)에게 편견이 적어서, 료마(龍馬), 나카오카(中岡)들과도 친교를 맺고 있었다. 이 점에서는, 죽마고우인 고토(後藤)와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스승인 토요(東洋)를 살해당한 원인에 기인하여, 토사(土佐) 킨노당(勤皇党)의 탄압에는 인정 사정없이, 타케치(武市) 이하 당원을 일제히 처형하고 말았다.

 山内容堂は、板垣の勤皇思想を「過激で無知の証拠」とたしなめたが、一本気で情に厚い性格と、武人としての資質を高く買っていた。その見立て通り、政治家となった本人の思惑とは裏腹に、他に抜きん出る才能は軍事にこそあった。
 야마노치 요도(山内容堂)는 이타가키(板垣)의 킨노(勤皇)사상을「과격하고 무지의 증거」라고 지적하지만, 외곬이고 인정이 두터운 성격과 무인으로서의 자질은 높이 평가했다. 그 진단대로 정치가였던 본인의 의도와는 상반되게 뛰어난 재능은 군사에 있었다.

주(註): 원문에는 거론하고 있지 않지만, 타이스케(たいすけ)는 메이지 6년(明治 6年, 1873年), 세이칸론(征韓論)을 주장합니다.

용어 설명
– 죠시(上士) じょうし
부케시대(武家時代)에 신분(身分)이 높은 부시(武士).

– 삿쵸(薩長) さっちょう
사츠마한(薩摩藩)과 쵸슈한(長州藩).

– 토바쿠(倒幕) とうばく
바쿠후(幕府)를 타도하자는 주장.

– 고시(郷士) ごうし
에도시대(江戸時代)에 농촌에 살던 부시(武士).

– 사바쿠(佐幕) さばく
바쿠마츠시대(幕末時代)에 킨노(勤皇) ・ 토바쿠(倒幕)의 사상에 반대하고 에도 바쿠후(江戸幕府)의 존속(存続)을 지지했던 일.

– 세이칸론(征韓論) せいかんろん
메이지 6년(明治 6年, 1873年),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 ・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들이 조선(朝鮮)의 반일적 쇄국주의(鎖国主義)를 명목(名目)으로, 이것을 토벌할 것을 주장했던 론(論).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사진 출처
근대 일본인의 초상(近代日本人の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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