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維新の嵐 ・ 幕末志士伝(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 国司信濃(쿠니시 시나노)

번역(翻訳): 방석구

国司信濃(くにし しなの)
쿠니시 시나노(国司信濃)

天保13年, 1842 ~ 元治元年, 1864. 享年23歳
텐포 13년(天保 13年) ~ 겐지 원년(元治 元年). 향년 23세.

 長州の名家、高洲家に生まれ、代々要職を輩出した国司家の養子となる。馬術、剣術に長じ、また砲学にも精通した武門の人だった。
 쵸슈(長州)의 명가, 타카스케(高須家)에서 태어나, 대대로 요직을 배출한 쿠니시케(国司家)의 양자가 된다. 마술(馬術), 검술(剣術)에 능하고, 또한 포학(砲学)에도 정통한 무문(武門)인이었다.

 色白で細面の一見物静かな風貌だが、外見に似合わず気性が荒く、戦国時代の軍記物を読み耽けっては英雄豪傑に自身を擬していたという。
 살갗이 희고 갸름한 얼굴의 일견 차분한 풍모(風貌)지만, 외견에 걸맞지 않게 기질이 난폭하고, 센고쿠시대(戦国時代)의 군기물(軍記物)을 탐독하고서는 영웅호걸에 자신을 견주었다고 한다.

 藩内では望みかなって軍事指揮官である大組頭役に就任。長州を取り巻く切迫した情勢を見て、有事に備えてたびたび軍事調練を行なった。その采配の見事さに、従う兵士たちはみな心服したという。また華奢な信濃が馬上で鞭を振るい、下知を下す美しい姿には、見物していた領民たちからも歓声が上がった。
 한(藩)내에서는 기대처럼 군사지휘관인 오구미 카시라야쿠(大組頭役)에 취임. 쵸슈(長州)를 둘러싼 절박한 정세를 보고, 유사시에 대비하여 빈번이 군사조련을 시행했다. 그 지휘의 완벽함에, 수하 병사들은 심복(心服)했다고 하며, 또한 화사한 시나노(信濃)가 마상에서 지휘봉을 휘둘러, 명령을 내리는 아름다운 모습에는, 구경하고 있던 영민(領民)들로부터도 환호성이 울렸다 한다.

 家格では高杉晋作、桂小五郎らよりも遥かに高いが、実際には彼らと親交を結び、激烈な尊王攘夷家となる。長井雅楽の検死役や馬関惣奉行などの重職を歴任するなど、藩主父子からの信任も厚かった。しかし本人はあくまで”戦国の清正、正則のような豪傑”を夢見ており、後に惣奉行を解任され、再び軍事専任になった時には大喜びしたらしい。
 가문(家門)에 있어서는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카츠라 코고로(桂小五郎)등 보다 훨씬 높았지만, 실제에서는 그들과 교류를 맺어, 격렬한 손노죠이(尊王攘夷)가가 되었다. 나가이 우타(長井雅楽)의 검사(検死)역이나 바칸 소우부교(馬関惣奉行)등의 중직을 역임하는 등, 한슈(藩主) 부자로부터의 신임도 두터웠다. 그러나 본인은 어디까지나 “센고쿠(戦国)의 키요마사(清正) –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 -, 마사노리(正則) –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 같은 호걸”을 꿈꾸고 있어, 후에 소우부교(惣奉行)에서 해임되어, 다시 군사전임이 되었을 때에는 매우 기뻐했던 것 같다.

 禁門の変では、兵400を率いて出陣。存分に戦ったが、軍略家の信濃には当初から敗戦が予測できていただろう。この時の敗戦の責と、長州征伐における生けにえとして切腹を命じられると、文句一つこぼさず死に臨んだという。戦国武将的な生き方に憧れ、それを貫いた、幕末では珍しい武人だった。
 킨몬의 변(禁門の変)에서는, 병력 400을 이끌고 출진하여 마음껏 싸웠지만, 군략가(軍略家)인 시나노(信濃)에게는 처음부터 패전이 예측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 때의 패전 책임과, 쵸슈 세이바츠(長州征伐)에 있어서의 희생물로서 셋푸쿠(切腹)를 명 받아, 일언반구 없이 죽음에 임했다고 한다. 센고쿠(戦国) 부쇼(武将)적인 생활방식을 동경해, 그것을 관철한, 바쿠마츠(幕末)에 있어서는 보기 드문 무인(武人)이었다.

용어 설명
– 킨몬의 변(禁門の変) きんもん-のへん
하마구리고몬의 변(蛤御門の変)

– 하마구리고몬의 변(蛤御門の変) はまぐりごもん-のへん
겐지 원년(元治 元年, 1864年) 7월, 전년 8월 18일의 정변에서 쿄토(京都)를 쫓겼던 쵸슈한(長州藩)이 형세만회를 위하여 쿄토(京都)에 군사를 전진시켜, 아이즈(会津) ・ 사츠마한(薩摩藩) 등의 군사와 하마구리고몬(蛤御門) 근처에서 교전(交戦)하고 패했던 사건(事件).

– 쵸슈 세이바츠(長州征伐) ちょうしゅう-せいばつ
바쿠마츠(幕末)기, 도쿠가와 바쿠후(徳川幕府)의 쵸슈한(長州藩) 토벌전쟁. 겐지 원년(元治 元年, 1864年) 7월, 하마구리고몬의 변(蛤御門の変)에서 황거(皇居)로 발포한 것을 이유로 바쿠후(幕府)는 출병. 시코쿠(四国) 함대(艦隊) 시모노세키(下関) 포격(砲撃)사건(事件) – 시코쿠 연합함대 시모노세키 포격사건(四国連合艦隊下関砲撃事件) – 에 의해 보수파(保守派)로 실권이 바뀌고 있던 쵸슈한(長州藩)은, 항전하지 않고 바쿠후(幕府)에 항복 – 제1차(第一次) 쵸슈 세이바츠(長州征伐).

그 후, 쵸슈한(長州藩)에서는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등의 토바쿠파(討幕派)가 반란에 의해 실권을 장악, 바쿠후(幕府)에 대립. 바쿠후(幕府)는 케이오 2년(慶応 2年, 1866年) 6월 재차 정벌을 시작하지만, 제한(諸藩)의 반대 등으로 사기가 오르지 않고, 거한(挙藩) 체제인 쵸슈군(長州軍)에 각지에서 패해, 재 정벌은 실패, 바쿠후(幕府)의 권위(権威)는 급속히 약화되었다. – 제2차(第二次) 쵸슈 세이바츠(長州征伐).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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