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維新の嵐 ・ 幕末志士伝(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 西郷隆盛(사이고 타카모리)

번역(翻訳): 방석구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

西郷隆盛(さいごう たかもり)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

文政10年, 1827 ~ 明治10年, 1877. 享年51歳.
분세이 10년(文政 10年, 1827年) ~ 메이지 10년(明治 10年, 1877年). 향년 51세.

 薩摩の下級武士層の出身。藩主、島津斉彬に見出され、その薫陶を受けて育つ。志士としての西郷の思想や行動指針は、大部分がこの斉彬から学んだもの。そのため、斉彬の死後、事実上薩摩の国主となった久光とは終生相容れない仲となる。
 사츠마(薩摩)의 하급부시(武士) 출신. 한슈(藩主)인 시마즈 나리아키라(島津斉彬)에게 발탁되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지사(志士)로서의 사이고(西郷)의 사상(思想)이나 행동지침은 대부분이 이 나리아키라(斉彬)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이었다. 그 때문에, 나리아키라(斉彬) 사후, 사실상 사츠마(薩摩)의 코쿠슈(国主)가 된 히사미츠(久光)와는 양립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深い淵を思わせる大きな瞳と、相撲取りのような体躯で他人を圧倒。龍馬や勝海舟とはまた違った魅力を持っていた。沈着冷静で温厚だが、ひと度怒り出すと誰にも止める術はなかったという。
 깊은 연못을 생각하게 하는 큰 눈동자와, 씨름꾼 같은 체구로 타인을 압도하였으며, 료마(龍馬)나 카츠 카이슈(勝海舟)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침착 냉정하고 온후하지만, 한번 화내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그를 만류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情の人で、中村半次郎など郷里の後輩たちを溺愛した。明治政府において彼らをことごとく要職に就けたのは、ひとえにこの情の深さから。反面、才能や実力に関わらず人を重用して失敗することも多く、この点では実力主義の大久保利通と衝突した。
 정이 있는 사람으로, 나카무라 한지로(中村半次郎)등 고향의 후배들을 몹시 사랑했다. 메이지 정부(明治政府) 시절 그들을 모조리 요직에 앉힌 것은 오로지 정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재능이나 실력에 관계없이 사람을 중용하여 실패한적도 많았는데, 이점에서는 실력주의인 오쿠보 토시미치(大久保利通)와는 완전히 달랐다.

 酒に酔うと陰毛を焼いて座を湧かすなど陽気な性格だったが、その正体は清濁併せ呑む大政治家で、大久保が画策したと噂される数々の陰謀(例えば孝明帝の毒殺や龍馬の暗殺)も、実際には西郷のゴーサインなしには不可能だったと思われる。
 술에 취하면 자신의 음모(陰毛)를 태워 분위기를 돋우는 등 쾌활한(?) 성격이었지만, 그 정체는 청탁병탄(清濁倂呑)한 대정치가(大政治家)로 오쿠보(大久保)가 획책했다는 다수의 음모 – 예를 들면 코메이 미카도(孝明帝)의 독살이나 료마(龍馬)의 암살 – 도 실제로는 사이고(西郷)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생각된다.

 現世的な欲望が少なく、金にも名誉にも転ばないタイプ。唯一人望好きというのが弱点で、人の好意や信望を集めることに異常に執着し、しばしば金銭をばら撒いたり出世の後押しをした。西南戦争は、この西郷唯一の弱点が引き起こした悲劇といえるだろう。
현세적 욕망이 적어, 돈에도 명예에도 승복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유일한 약점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으로, 사람의 호의나 신망을 모으는 것에 이상하게 집착하여, 여러 차례 금전을 뿌리거나 출세를 후원했다. 세이난센소우(西南戦争)는 이 사이고(西郷)의 유일한 약점이 야기한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용어 설명
– 세이난센소우(西南戦争) せいなん-せんそう 
메이지 10년(明治 10年, 1877年),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를 중심으로 하는 카고시마(鹿児島) 부시(武士) 가문의 반란. 세이칸론(征韓論)에 의해 하야한 사이고(西郷)는 낙향해서 시갓코(私学校)를 일으켰지만, 그 생도가 사이고(西郷)를 추대하여 거병, 쿠마모토(熊本) 친다이(鎮台)를 포위했지만, 정부군(政府軍)에 진압당해, 사이고(西郷)등의 지휘자는 대부분 자결했다. 메이지(明治) 초기의 부시(武士) 가문의 반란 가운데 최대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의 반정부운동(反政府運動)의 중심은 자유민권운동(自由民権運動)으로 이동했다.

– 세이칸론(征韓論) せいかんろん
메이지 6년(明治 6年, 1873年),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 ・ 이타가키 타이스케(板垣退助)들이 조선(朝鮮)의 반일적 쇄국주의(鎖国主義)를 명목(名目)으로, 이것을 토벌할 것을 주장했던 론(論).

– 시갓코(私学校) しがっこう
메이지 7년(明治 7年, 1874年), 하야한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가 고향 카고시마(鹿児島)에 건립한 학교.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사진 출처
근대 일본인의 초상(近代日本人の肖像)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