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歴史群像シリーズ(역사군상시리즈) 幕末大全 ・ 上巻(바쿠마츠대전) 쇼인(松陰)의 제자 평과 그들의 그 후

번역(翻訳): 방석구

文=樹下明紀
글: 키노시타 메이키(樹下明紀)

松陰の塾生評と彼らのその後
쇼인(松陰)의 제자 평과 그들의 그 후

 久坂玄瑞とともに松門の双璧とにわれ、松陰が「識見気魄他人及ぶなく、人の駕馭を受けざる高等の人物」と評した高杉晋作は、維新の夜明けを前にして死んだ。
 쿠사카 겐즈이(久坂玄瑞)와 함께 쇼몬(小門)의 쌍벽이라고 일컬어지고, 쇼인(松陰)이 「식견이나 기백에서는 그에 필적할 사람이 없고, 타인의 가어(駕馭)를 받지 않는 고등의 인물」이라 평한 다카스키 신사쿠(高杉晋作)는 유신(維新)의 여명을 눈 앞에 두고 죽었다.

 双璧のもう一人、久坂に対しては「防長年少第一流の才気ある男」としたが、その久坂も、「朴訥頗る沈毅の質あり」とされた作間忠三郎と刺し違え、禁門の変に散った。
 쌍벽의 또 한 명, 쿠사카(久坂)에 대해서는「보쵸(防長) 제일류의 재기 있는 남자」라고 했지만, 그 쿠사카(久坂)도 「목눌(朴訥)하고 대단히 의연한 성질이 있다」라고 하는 사쿠마 츄자부로(作間忠三郎) – 테라시마 츄자부로(寺島忠三郎) – 와 서로 상대를 맞찔러 킨몬의 변(禁門の変)에서 산화(散華)했다.

 四天王といわれた入江九一、吉田稔麿も京都で死んだ。入江は久坂と禁門の変で戦死、吉田稔麿は同じ松門の杉山松助とともに池田屋で新選組に斬殺された。
 사천왕이라고 불린 이리에 쿠이치(入江九一), 요시다 토시마로(吉田稔麿)도 쿄토(京都)에서 죽었다. 이리에(入江)는 쿠사카(久坂)와 마찬가지로, 킨몬의 변(禁門の変)에서 전사. 요시다 토시마로(吉田稔麿)는 같은 쇼몬(松門)의 스기야마 마츠스케(杉山松助)와 함께 이케다야(池田屋)에서 신센구미(新撰組)에게 참살 당했다.

 維新前に多くが倒れた松門の中で、明治の顕官となった代表格は伊藤と山縣であろう。
 유신(維新) 전에 다수가 죽은 쇼몬(松門) 가운데에서, 메이지(明治)의 고관이 된 대표격은 이토(伊藤)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 와 야마가타(山縣) –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 일 것이다.

 松陰から「中々周旋家になりさうな」といわれた伊藤博文は、明るい人柄で初代内閣総理大臣に就任した。また、松陰は山縣有朋を「 一介の武弁」としたが、のち内閣総理大臣として、明治政界に君臨した。
 쇼인(松陰)으로부터 「알선가가 된듯하다」라고 불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밝은 인품으로 초대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에 취임했다. 또한 쇼인(松陰)은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를 「보잘것없는 부시(武士)」라고 생각했지만, 뒷날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으로서 메이지(明治)정계에 군림했다.

 「事に臨みて驚かず、少年中希觀の男子」とされた品川弥次郎は内務大臣を務め、「勇あり、智あり、誠実人に過ぐ」とされた前原一誠は兵部大輔を務めたのち、萩の乱を起こして敗死した。このほか、司法大臣を務めた山田顕義、 遞信大臣を務めた野村靖などがいる。 
 「일에 직면해서는 흔들림이 없고, 소년 중 보기 드묾 남자」라고 하는 시나가와 야지로(品川弥次郎)는 내무대신(内務大臣)을 맡고, 「용기와 지혜가 있고, 성실함이 넘치는 사람」라고 하는 마에바라 잇세이(前原一誠)는 효부타이후(兵部大輔)를 맡은 후, 하기의 란(萩の乱)을 일으켰으나 패전해 사망했다. 이밖에, 사법대신(司法大臣)을 맡았던 야마다 아키요시(山田顕義), 체신대신(遞信大臣)을 맡았던 노무라 야스시(野村靖)등이 있다.

 また後年、日露戦争(明治37~38年・1904~05)の旅順要塞攻略で知られる乃木希典は、松陰と同じく玉木文之進の薫陶を受け、理想の教育者として松陰を敬愛した。
 그 다음해, 니치로센소우(日露戦争)에서 – 메이지 37년~38년(明治 37~38年, 1904~05年) – 료준요새(旅順要塞) 공격으로 알려진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는 쇼인(松陰)과 같이 타마키 분노신(玉木文之進) – 쇼인(松陰)의 숙부 – 의 훈도(薫陶)를 받아, 이상(理想)의 교육자로서 쇼인(松陰)을 경애(敬愛)했다.

 松下村塾は松陰死後、細々とした経営が続けられ、玉木文之進主宰(しゅさい)、その後を 杉民治が塾主となり、明治25年頃閉鎖(へいさ)され、その跡に松陰神社が建てられた。
 쇼카손쥬쿠(松下村塾)는 쇼인(松陰)사후, 타마키 분노신(玉木文之進)이 주재(主宰), 그 후에는 스기 민지(杉民治) –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의 형 – 가 쥬쿠슈(塾主)가 되어, 메이지 25년경 폐쇄되었다. 그 흔적으로 쇼인신사(松陰神社)가 세워졌다.

주(註): 본 박스 글의 전문은「역사군상시리즈(歴史群像シリーズ) 바쿠마츠대전(幕末大全) 상권(上巻) P.96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입니다.

인물 설명
–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のぎ-まれすけ
 1849년 ~ 1912년. 육군 군인(陸軍軍人). 타이쇼(大将). 쵸슈(長州) 사람. 닛신센소우(日清戦争)에서 제1여단장(第一旅団長)으로서 종군(従軍)했다. 니치로센소우(日露戦争)에서는 제3군사령관(第三軍司令官)으로서 료준(旅順)을 공략. 후에 가쿠슈인장(学習院長). 시즈코부인(静子夫人)과 함께 메이지텐노(明治天皇)의 장례 일에 순사(殉死)했다.

용어 설명
– 킨몬의 변(禁門の変) きんもん-のへん
하마구리고몬의 변(蛤御門の変)

– 하마구리고몬의 변(蛤御門の変) はまぐりごもん-のへん
 겐지 원년(元治 元年, 1864年) 7월, 전년 8월 18일의 정변에서 쿄토(京都)를 쫓겼던 쵸슈한(長州藩)이 형세만회를 위하여 쿄토(京都)에 군사를 전진시켜, 아이즈(会津) ・ 사츠마한(薩摩藩) 등의 군사와 하마구리고몬(蛤御門) 근처에서 교전(交戦)하고 패했던 사건(事件).

– 하기의 란(萩の乱) はぎのらん
 메이지 9년(明治 9年, 1876年), 야마구치현(山口県) 하기(萩)에서 일어난 사족(士族) – 부시(武士) 집안 – 반란. 전 산기(参議) 마에바라 잇세이(前原一誠)등의 불만 사족(士族)은 쿠마모토(熊本)의 신푸렌의 난(新風練の乱)에서 호응해 거병했지만 진압당했다.

– 쇼카손쥬쿠(松下村塾) しょうかそんじゅく
 에도(江戸)초기 쵸슈하기(長州萩)에 있던 사설 교육기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숙부(叔父)로부터 이어받아서, 쿠사카 겐즈이(久坂玄瑞) ・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손노죠이(尊王攘夷) 운동 지사(志士)를 배출했다.

– 쇼인신사(松陰神社) しょういん-じんじゃ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모신 신사(神社). 야마구치현(山口県) 하기시(萩市)에 있는 신사(神社). 메이지 40년(明治 40年, 1907年) 쇼카손쥬쿠(松下村塾) 사적으로 세워졌다.

원문 출처
역사군상시리즈(歴史群像シリーズ) 바쿠마츠대전(幕末大全) 상권(上巻) P.99

사진 출처
근대 일본인의 초상(近代日本人の肖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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