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維新の嵐 ・ 幕末志士伝(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 佐々木只三郎(사사키 타다사부로)

번역(翻訳): 방석구

佐々木只三郎(ささき たださぶろう)
사사키 타다사부로(佐々木只三郎)

天保4年(1833) ~ 慶応4年(1868). 享年36歳.
텐포 4년(天保 4年, 1833年) ~ 케이오 4년(慶応 4年, 1868年). 향년 36세.

 会津藩士の子で、幕臣、佐々木矢太夫の養子となる。新撰組と並ぶ京の治安維持部隊、見廻組の与頭。精武流剣術と宝蔵院槍術に長じた武道の達人で、清河八郎の暗殺で有名になる。また坂本龍馬、中岡慎太郎の暗殺も直接指揮を執ったといわれている。
 아이즈(会津) 한시(藩士)의 아들로, 바쿠신(幕臣) 사사키(佐々木矢太夫)의 양자가 되었다. 신센구미(新撰組)와 견줄 쿄(京) 치안유지부대(治安維持部隊) 미마와리구미(見廻組)의 구미가시라(組頭)였다. 세이부류(精武流) 검술(剣術)과 호죠인(宝蔵院) 창술(槍術)에 능한 무도의 달인으로, 키요카와 하치로(清河八郎)의 암살로 유명해졌다. 또한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나카오카 신타로(中岡慎太郎)의 암살도 직접 지휘를 맡았다고들 한다.

 旗本という、一般的な尊攘派浪士に比べれば恵まれた階層の出身で、なおかつ見廻組という組織を束ねる身分だが、要は岡田以蔵や田中新兵衛などと変わらぬ人斬り屋。それも、殺した相手はみな大物ばかりというプロ中のプロ。
 하타모토(旗本)라는, 일반적인 손죠파(尊攘派) 로시(浪士)에 비하면 풍족한 계층 출신이었고, 게다가 미마와리구미(見廻組)라는 조직을 통솔하는 신분이었지만, 오카다 이조(岡田以蔵)나 타나카 신베에(田中新兵衛)등과 별반 다르지 않은 히토키리(人斬り屋) – 살인자 – 였다. 그것도, 죽인 상대는 모두 거물뿐이라는 프로(Pro) 중에 프로였다.

 和歌を嗜んだというが、その道で長野主膳と親交を持つ。長野は井伊直弼の側近で、陰湿かつ姑息な諜報活動で『安政の大獄』の直接の引き金を引いたフィクサー。その長野と親しかった佐々木にも、同質の臭いを感じる。
 와카(和歌)에 소양을 쌓았다고 하지만, 그 길에서 나가노 슈젠(長野主膳)과 친교를 가졌다. 나가노(長野)는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의 측근으로서, 음습하며 고식(姑息)적인 첩보활동으로「안세이의 대옥(安政の大獄)」의 직접적인 계기를 만든 픽서(Fixer)였다. 그 나가노(長野)와 친분이 있던 사사키(佐々木)에게서도, 동질의 역한 냄새를 느낀다.

 体は頑健で筋肉質、顔色は浅黒く、常に陰鬱な表情だったという。しかし笑うとエクボができたといわれ、京女の中にはこの笑顔につり込まれた者も多かった。
 몸은 강건하고 근육질, 얼굴빛은 거무스름하고, 언제나 음울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웃으면 보조개가 생겼다고들 해, 쿄토(京都)의 여인들 사이에서는 그 웃는 얼굴에 반한 사람도 많았다.

 同じ職務ながら新撰組に激しい対抗心を燃やし、また多摩の豪農出身の近藤や土方を蔑む心が強かった。思想的には熱烈な鎖国主義者で、時勢の移り変わりには疎かった。
 동일한 직무이면서도 신센구미(新撰組)에 격렬한 반발심을 표출하고, 또 타마(多摩) 호농(豪農) 출신인 콘도(近藤)나 히지카타(土方)를 업신여기는 마음이 강했다. 사상적으로는 열렬한 쇄국주의(鎖国主義)자로, 시세의 변화에는 소원했다.

용어 설명
– 미마와리구미(見廻組) みまわり-ぐみ
분큐 4년(文久 4年, 1864年), 에도 바쿠후(江戸幕府)가 쿄토(京都)의 치안을 회복 ・ 유지하기 위해서 설치한 하타모토(旗本) ・ 고케닌(御家人)의 자제(子弟)로 구성된 순찰대. 신센구미(新撰組)와 함께 쿄토슈고쇼쿠(京都守護職)에 직속해, 시내를 순찰하고 손죠파(尊攘派) 로시(浪士)의 적발에 임했다. 케이오 3년(慶応 3年, 1867年), 타이세이호칸(大政奉還)에 의해 폐지되었다.

원문 출처
유신의 바람 ・ 바쿠마츠지사전(維新の嵐 ・ 幕末志士伝)

관련 서적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씨의 바쿠마츠(幕末) – 기묘한 하치로(奇妙なり八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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