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Plutarch)의 플루타르크 영웅전 1권 리쿠르고스(Lycurgus): 요약 정리

목적: 그리스와 로마 인물들의 이해와 비교 분석

플루타르크 영웅전 1권
스파르타(Sparta)의 법령을 제정한 리쿠르고스(Lycurgus)
 800 BC? ~ 730 BC?. 리쿠르고스(Lycurgus)는 스파르타(Sparta)의 왕 에우노무스와 두 번째 부인인 디오나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속된 국정 혼란으로 부친이 살해당하자 장남인 폴리데크테스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차남인 리쿠르고스가 권력을 이양 받았다. 얼마 후 형수의 잉태 사실을 알게 된 리쿠르고스는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 후 발생할 왕권 투쟁을 피하는 동시에 새로운 개혁의 단초를 찾아 떠난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Sparta)의 백성들은 그의 성품을 흠모했기에, 권력자들은 백성들과 그들 사이의 완충 역할을 위해 그를 그리워했다.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된 상황에서 리쿠르고스(Lycurgus)는 귀국하여 개혁의 칼을 빼어 든다.

 첫째, 원로원을 세워 왕권의 전제적 속성을 견제하고, 반대로 지나친 백성들의 방종을 저지시켰다. 둘째, 극단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토지를 재분할하여 균등 분배하였고, 부의 재분배에도 착수하여 금화와 은화를 없애고 사용에 불편하고 가치가 없는 구리돈을 사용하게 하였다. 더불어 모든 사치성 예술을 불법화하여 장인들이 실용적 물품에만 전념하도록 강제하였다.

 셋째, 탐욕과 나태를 예방하고자 모든 백성들의 공동식사와 정해진 음식을 섭취하도록 하였으며, 식당을 기반으로 국정에 대한 정보와 대화술을 익혔다. 또한 공동식사에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투표로 정하도록 하였다.

레트라의 주요내용

– 법령
 그는 형식주의를 예방하기 위하여 어떤 법령도 문자화 하지 않았으며, 교육을 통하여 백성들의 마음속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그는 이러한 방법이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했다.

– 전쟁
 동일국가와 장기간에 걸친 반복되는 전쟁을 금했다. 그 까닭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적이 아군의 전략 ・ 전술 패턴을 익히고 성장하기 때문이었다.

– 여성
 산고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도록 신체단련을 하도록 했으며, 소박함, 건강, 고귀한 정신을 갖도록 하였다.

– 결혼
 결혼한 부부일지라도 상호간의 만남을 어렵게 하여 자제심과 건강, 원기 넘치는 육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더불어, 좋은 혈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배우자와의 관계를 허락하였다.

– 자녀 양육
 토론을 통하여 사리판단과 일의 시시비비를 깨닫게 하였으며, 우아하고 재치 있는 대화법 그리고 시와 음악에 대한 교육으로 열정과 정열로 불타 오를 수 있도록 하였다.

– 장례
 무덤을 가까운 곳에 둠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나 어리석은 미신을 예방했다.

 리쿠르고스는 모든 중요한 제도들이 자리잡자 이러한 것들을 신탁에 묻기 위해 델포이로 떠난다. 그는 떠나기 전에 백성들로부터 자신이 돌아오기 전까지 수립된 제도를 절대 고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는다. 그 후, 이것을 확고히 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게 된다.

다음에는 그리스를 창건한 테세우스,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를 정리해볼까 합니다.

기억에 남는 구절

적의 침략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문의를 해왔을 때,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청빈하게 살며 잘난 체하지 않을 것.”

도시를 성벽으로 둘러쌓는 것이 과연 필요한 일인가를 물어오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보냈다.
“견고한 도시는 벽돌 대신에 용기 있는 사람들로 담을 쌓는 법이오.”

 위 구절은 일본 센고쿠지다이(戦国時代)의 무장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人は城、人は石垣、人は堀。情けは味方、仇は敵なり” 와도 일맥상통한다. “どれだけ城を堅固にしても、人の心が離れてしまったら世を治めることはできない。情けは人をつなぎとめ、結果として国を栄えさせるが、仇を増やせば国は滅びる” – Wikipedia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中에서 발췌

“굳세고 날카로운 강철이
하프 연주와 조화를 이룬다.”

참고 자료
Lycurgus of Sparta
리쿠르고스 (스파르타)
武田信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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